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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발표한 수치 하나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5%에서 3.2%로, 불과 석 달 만에 0.7%포인트나 올려 잡은 겁니다. 국내외 주요 기관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입니다. 그런데 같은 보고서 안에 이 축포와는 어울리지 않는 숫자가 하나 더 있었습니다. 올해 새로 생기는 일자리가 11만 개에 그칠 것이라는, 종전 전망보다 6만 개나 줄어든 전망치였습니다. 경제는 더 빠르게 크는데, 일자리는 오히려 덜 생긴다는 이 모순, 어떻게 된 일인지 들여다봤습니다.
성장률을 끌어올린 건 사실상 반도체 하나였다
이번 상향 조정분 0.7%포인트 가운데 0.6%포인트, 그러니까 10 중 8.5 정도가 반도체 하나에서 나왔습니다. 세계반도체무역통계(WSTS)에 따르면 올해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매출액은 무려 302% 늘어날 것으로 전망됩니다. 매출이 세 배 넘게 뛴다는 뜻입니다. 이 흐름에 힘입어 KDI는 올해 상품수출 증가율 전망치를 8.7%로, 설비투자 증가율은 7.9%로 각각 4%포인트 넘게 올려 잡았습니다. 설비투자는 2021년 이후 5년 만에 가장 큰 폭의 증가입니다. 경상수지 흑자 전망도 3,597억 달러로, 역대급 규모로 불어날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이런 흐름은 KDI만의 판단이 아닙니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하루 앞선 18일 한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3.5%로 제시했는데, 지난 2월 1.8%였던 전망치를 석 달마다 큰 폭으로 올려온 결과입니다. 무디스 역시 이 호황이 최소 내년 중반까지는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결국 지금 한국 경제 숫자가 좋아 보이는 이유는 거의 전부 반도체 한 산업이 만들어내고 있다고 봐도 무방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그 온기가 일자리로는 안 흐른다
문제는 반도체 산업이 원래부터 고용을 많이 늘리는 산업이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공장 자동화 수준이 높고, 설비투자 규모에 비해 필요한 인력은 상대적으로 적은 산업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출과 투자는 두 자릿수로 늘어나는데, 일자리 증가 폭은 오히려 6만 개 줄어드는 역설이 벌어졌습니다. 민간소비 전망치도 2.3% 증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됐는데, 실질 총소득은 늘었는데도 그 소득 개선 효과가 반도체 관련 부문에만 몰리면서 소비 회복 속도는 완만할 수밖에 없다는 게 KDI의 설명입니다. 앞서 한국은행이 발표한 청년고용 관련 보고서에서도 비슷한 그림이 확인된 바 있습니다. 최근 4년간 청년 일자리 28만 5,000개가 줄었는데, 이 중 상당수가 AI·정보서비스 같은 업종에서 사라졌습니다.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 산업이 경제 전체 숫자는 밀어올리면서도, 정작 새로운 일자리는 그만큼 만들어내지 못하는 구조가 여러 지표에서 동시에 확인되고 있는 셈입니다. KDI도 이런 흐름을 두고 "반도체 호황이 경제 전반의 소비와 고용 개선으로 빠르게 확산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한계로 명확히 짚었습니다.
이 숫자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성장률 3.2%라는 숫자만 놓고 보면 올해 한국 경제는 꽤 잘나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 숫자가 모든 사람의 일상에 똑같이 반영되는 건 아닙니다. 반도체 관련 대기업과 그 협력업체에 다니는 사람들은 이 호황을 몸으로 느낄 수 있겠지만, 그 외 업종에 종사하거나 새로 일자리를 찾고 있는 사람 입장에서는 뉴스 속 숫자와 실제 체감 경기 사이의 거리가 오히려 더 벌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발표를 볼 때는 성장률이라는 헤드라인 숫자 하나만 보기보다, 그 성장이 어느 산업에 몰려 있는지, 그리고 취업자 수나 민간소비 같은 '체감형 지표'가 함께 개선되고 있는지를 같이 봐야 실제 경기를 더 정확히 가늠할 수 있습니다. KDI는 앞으로의 위험 요인으로 AI 투자 수익성에 대한 우려와 글로벌 반도체 수요 둔화 가능성을 꼽았는데, 이는 지금의 호황이 반도체라는 단일 엔진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한 대목이기도 합니다.
결국 이번 KDI 발표가 보여주는 건 단순한 낙관도, 비관도 아닙니다. 반도체라는 강력한 엔진 하나가 경제 전체 숫자를 끌어올리고 있지만, 그 힘이 일자리와 소비로 고르게 퍼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 성장률과 체감 경기 사이의 이 간극을 좁히는 것이, 지금 한국 경제가 마주한 실질적인 과제로 보입니다.
